파업전야

자본가와 노동자는 대립적인 존재다. 김규항의 말대로 "이건희와 나는 같은 국적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존재"이기도 하고, 장준환이 영화를 통해 절묘하게 제기한 것처럼, 같은 인종 아니 같은 인류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각을 세우기도 한다. 전태일의 절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87년에 낙엽이 지듯 뒤돌아선 화이트칼라 앞에, 스스로의 사회성을 정치성으로 발전시킨건 노동자 집단이었다. 그들의 투쟁과 희생이 적어도 한반도 남쪽 절반이 조금에 조금이나마 진보가 되었던건 사실이다.

그들은 독재정권에 맞서던 선두였고, 거리낌없이 자신을 던질수 있던 - 그래서 가진걸 던질수 없었던 중산층 대신 피투성이가 됐던 - 투사였다. 언젠가부터, 이들은 '시민'들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지리적 의미의 도시(city)가 역사적 의미의 시민(citizen)에 담긴 뜻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파편화된 '시민', 아니 '도시민'들은 파업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연대는 무너졌고, 파업은 '집단 이기주의'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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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내 분규가 문제다.
알려질 사실만을 토대로 재구성하면 "임금협상에서 목표액을 채우면 성과급 150%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 목표액을 못채웠다. 그래서 규정대로 성과급을 100%만 지급했는데, 노조가 이면계약, 관례상 150%주는건데 뒷통수 때린거라며 시무식에 난입해 깽판을 쳤다" 정도가 된다.

상황 자체만을 두고 보면, 사실 노조 편들어줄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성과급은 말그대로 performances에 따라 지급되는 incentive고, 동영상이 아니라 어떤 근거가 있어도 서면으로 사인되지 않은 이면 계약을 관례 같은걸 들어서 법적 효용을 따지는건 '우기기'에 속한다.

게다가 현대차 노조 정도는 '약자'로 봐주기 힘든게 사실이다. 대기업-정규직 노조는 사회연대의 차원에서 지지를 보내주기에는, 스스로 너무나 사회연대에 참여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파견직 문제에 고개를 돌린 이들이었기에 '이익집단'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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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신문들은 일제히 비난에 나섰고, 심지어 전혀 관계없는 기사에서도 도요타의 약진이나,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미국자동차업계의 재도약 움직임까지 동원해가며 노동자들을 매장한다. 생산차질액=파업손실금으로 매도하는 작태같은건 정말 할말이 없다.

노동조합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하는건 확실하다. 노조와 사용자는 대립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 대립은 본질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의 범위를 가지고 있기에 (노동자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임금을, 사용자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량을 갈급한다), 이들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자본가의 척결과 생산수단의 공산화와 같은 목적이 아닌 이상, 결국 노동자 공동의 이익을 위한 이익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현재 체제 아래서, 이들의 투쟁 양상은 물론 주변과의 관계맺음도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들에게 요구하는 변화는, 동시에 사용자에게도 똑같이 요구되야 한다.
현대차는 올해 임단협에서 임원급들의 기본급을 지난해에 이어 2년연속 50%씩 인상했다. 그리고 관리자급 직원이라 노동조합에 가입할수 없는 과장급 들의 임금은 동결시켰고, 일반직들에겐 여느때의 관례처럼 임금협상에서 난항을 겪던 사항은 성과급 지급 -문제가 되고 있는 100%, 150%안 -으로 임금협상안을 타결했다. 노조가 반발하는건, 150%의 관례지급이 임금협상을 타결할수 있었던 핵심 내용이었고, 이에대해 사용자측과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면 계약을 했던것인데,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물론 사용자 입장에선 노조의 기를 꺾기 위해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동이고.

결국 사태의 핵심원인은 양측의 근본적인 불신이고, 구조적으로는 정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절차적 민주성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생기는 실질적 민주성의 갭이다. 현대차 노조가 이번 사태에서 결정적으로 욕먹어야할 부분은, 무리한 성과급을 요구한것도, 시무식을 망친 것도 아니다. 대중과의 연대와 소통에 실패해 결국 노동운동을 고립시켰다는 점이다. 그럴 수록 슬며시 웃음짓는건 사용자들 뿐이다.

만국의 노동자가 굳이 단결해야 하는 이유는, 만국의 자본가는 누가 안시키고 외치지 않아도 이윤이라는 이름앞에 알아서 단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을 통해 연대의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노동운동의 카운트파트너는 사용자뿐 아니라 시민과 다른 노동자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전설의 영화 '파업전야(1990)'를 는 17년전의 일이었다. 오늘날의 파업전야는 다르게 쓰여져야 한다.



p.s
난 Marineblues를 팬으로서 좋아하지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정철연씨의 비정치성은 종종 짜증이 난다. 그가 웹툰작가로서 지지를 받는 것은, 그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가 포함되지 않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가 이런 카툰은 그리지 않은게 훨씬 나을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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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7번국도 | 2007/01/09 23:19 | 내멋대로 해라 | 트랙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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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찍거나그리거나 at 2007/01/13 22:52

제목 : 노동하는 자는 있으되 노동자는 없는 나라
현대 자동차의 노조가 시무식을 방해한 것으로 다시 한번 강성 노조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고 먹고 살만한 것들이 왜 저지랄들이냐는 시민들의 눈총이 쏟아 지고 있다. 이번 현대노조의 시무식 난동을 비추는 언론은 몰상식한 노조가 시무식을 위해 출근하는 현대 사장에게 테러를 가한것에만 촛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지만 그렇게 테러를 당한 이유인 성과급 지급에 관한 노사간의 합의서가 어떻게 작성 되어 있으며 어떻게 해석될수 있는지에 대......more

Tracked from 日常茶飯事 at 2007/01/16 19:06

제목 : 현대자동차 노조. 참 재밌는 친구들.
+ [현대차 노조 파업 돌입] 노조, 녹취록도 조작? + 현대차 노조 4시간 부분파업 돌입+ 현대車노조 박유기 위원장 "2% 부족해서 노사관계 깨졌다"+ 기회는 왔다 현대차 잡아라…경쟁사 공장 증설 박차+ 현대차, 20년간 줄파업 왜?+ 노조 차량 교통범칙금도 회사에 미뤄+ 단호해진 회사 측 왜 ? 환율 하락 → 수익 악화 → 생존 위기감 + [현대차 노사관계 ‘역주행’]<中>특권의 상징 ‘빨간 조끼’+ 인도의 250만원대 소형차… ......more

Commented by 말줄임표 at 2007/01/11 02:03
잘 읽었습니다. 현대차 사태에 대해 많은 부분 정리가 되네요. 앞으로도 종종 들려 좋은 글들 눈팅하고 가겠습니다.^^;
Commented by albireo at 2007/02/07 12:24
역시 잘 짚었구나.
연대정신이 닳아버린 우리 노조와
상생이라고는 모르는 경영진 사이에서
spin-doctoring하는거.. 참 적성에 안맞다는 생각을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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